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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우유부단의 대명사다. 오죽하면 ‘햄릿 증후군’이란 신조어까지 생겼을까. 하지만 그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햄릿 (전략前略) 진정으로 위대함은 큰 명분이 있고서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명예가 걸렸을 땐 지푸라기 하나에도 큰 싸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럼 난 어떤가? 아버지는 살해되고 어머닌 더럽혀지고, 내 이성과 내 혈기가 강력히 미는데도 모든 걸 잠재우는 한편, 창피하게도 이만 병사의 임박한 죽음을 보지 않는가? 그들은 명성이란 환상, 속임수 때문에 침실처럼 무덤으로 가며, 그만한 숫자가 시비를 가리거나, 전사자를 파묻을 묏자리로도 충분치 않은 땅을 위하여 싸우지 않는가? 오, 지금부터 내내 생각이 피비리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 없으리라. (p. 148~ 150)햄릿이 진정으로 위대하지 않을 수는 있다. 지푸라기 하나에 큰 싸움을 찾아내기는커녕 복수의 문턱에서 다음을 기약하니 말이다. 그러나 햄릿은 자신뿐만 아니라 선왕의 명예도 중요하다. 기도 중인 클로디오스를 죽이는 건 청부 살인이지 복수가 아니라고 판단한다.(p. 125) 햄릿은 더 끔찍한 상황을 만나자며 칼에게 아서라, 고 말한다.(p. 125) 하지만 왕비의 내실에서 휘장을 뚫고 검을 찔러 넣어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p.127) 아서라, 칼아, 라고 말하고 거의 바로 이어진 행동이라 더 놀랍다.(p. 125) 덴마크란 감옥의 왕자이기에 그런 걸까. 길든스턴 감옥이요, 저하?햄릿 덴마크가 감옥이지.로젠크란츠 그럼 이 세상도 같은 것입니다.햄릿 훌륭한 감옥이지. 거기엔 수많은 구치소와 감방과 동굴이 있는데, 덴마크가 그 중 최악이야.로젠크란츠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하.햄릿 그래, 그럼 자네들에겐 아니지. 왜냐하면 좋거나 나쁜 건 없는데,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니까. 내겐 이게 감옥이야.로젠크란츠 그렇다면 저하의 야망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저하의 마음엔 그게 너무 좁지요.햄릿 오 하느님, 난 호도알(호두알의 오타가 아닐까 싶다. 새로 작성할 것은 비단 역사만이 아니라 번역 문학도 마찬가지라는 글이 무색하다) 속에 갇혀 있다 해도, 내 자신을 무한 공간의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네 ― 내가 악몽을 꾸지만 않는다면.길든스턴 그 꿈이란 게 사실은 야망입니다. 왜냐하면 야망에 찬 사람의 바로 그 본질이 꿈의 그림자에 불과하니까요.햄릿 꿈 그 자체가 그림자일 뿐이지.로젠크란츠 옳습니다. 그리고 야망의 속성이란 공기처럼 너무나 가벼워서,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라 생각됩니다.햄릿 그렇다면 거지들이 실체이고, 왕들과 허세부리는 영웅들은 거지들의 그림자란 말이군. 궁정으로 들까? 실토하네만, 난 이치를 따지지 못하겠어. (p. 72~ 73)햄릿이란 인물 역시 실체와 그림자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해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 햄릿의 그림자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 보니 점점 실체를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오로지 햄릿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폴로니어스가 아들 레어티즈에게 하는 조언도 인상에 남는다. 고전은 시공을 초월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할까. 일부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마음이 항상 복잡한 와중에도 진실해야겠다.폴로니어스 (전략前略) 싸움에 낄까 조심해라. 허나 끼게 되면, 상대방이 널 알아모시도록 행동해라. 귀는 모두에게, 입은 소수에게만 열고 모든 의견을 수용하되 판단은 보류해라. 지갑의 두께만큼 비싼 옷을 사입되 요란하지 않게, 고급으로 야하지 않게. 왜냐면 복장을 보고 사람을 아는 수가 많으니까. 최고위급 프랑스 사람들이 그 점에서 단연 으뜸가고 가장 귀티나지. 돈은 꾸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아라. 왜냐하면 빚 때문에 자주 돈과 친구를 함께 잃고, 또한 돈을 빌리면 절약심이 무디어진단다. 무엇보다도 네 자신에게 진실되거라. 그러면 밤이 낮을 따르듯 남에게 거짓될 수 없는 법. 잘 가라. 축복으로 끝낸 말이 네 안에서 여물기를. (p. 34~ 35)
영국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낳은 문제적 인간 ‘햄릿’ 삶과 죽음,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담고 있는 극문학의 정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인 햄릿 . 1601년에 창작한 이 작품은 격변하는 르네상스기의 흐름을 반영하는 시대정신의 산물이자,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며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는 햄릿을 통해 회의적 인간의 전형을 보여 준다. 갈릴레이와 동시대인인 셰익스피어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입된 새로운 문화로 인해 영국 사회가 술렁이던 상황, 아울러 통치자이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듬뿍 받던 에섹스 백작이 왕위 계승 문제로 한순간에 반란자가 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햄릿 을 구상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이라는 문제적 인간을 내세워 동물과 대비되는 지성의 능력과 한계, 그리고 인간의 양극성으로 인한 불안과 비극적 상황 앞에서 ‘진정한 선’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삶의 진실을 찾아 나가려는 햄릿의 고뇌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유효한 윤리적 질문,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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