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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밖에는 어둠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둠이 있다. 어둠은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둠은 언제나 빛보다 앞선다. 예전의 루는 어둠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불편해했다. 지금의 나는 그 사실을 기쁘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빛을 쫓는 한,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P.553) 책의 제목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어둠의 속도’는 글쓴이의 아들 마이클이 한 말에서 왔다. 어느 날, 아들이 들어와 문틈에 기대 묻더군요. “빛의 속도가 일 초에 삼십만 킬로미터라면, 어둠의 속도는 얼마예요?” 제가 “어둠에는 속도가 없단다.” 하고 일상적인 답을 했더니 아들이 말하더군요. “더 빠를 수도 있잖아요. 먼저 존재했으니까요.” (P.571)항상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관념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 어둠이 빛에 앞서 있다는 관점을 처음 대했을 때 작지만 신선한 충격 같은 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둠이 더 먼저 존재한다는 생각은 부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일깨우는 장면들로부터 용기를 얻게도 된다. 루 애런데일은 자폐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폐가 어떤 모습이든 간에 루는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는 직업을 갖고 있고 자신의 패턴에 따라 혼자서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자폐인들의 특징인, 패턴을 잘 찾는 특성을 활용하는 일을 한다. 이런 루의 생활 패턴을 깨트리는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회사의 새로운 상사인 크랜쇼가 루가 속한 분과-자폐인들이 소속되어 일을 하는-를 없애고 싶어 하면서 자폐인들을 거의 강제로 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 프로그램에 집어넣으려 하는 사건이다. 크랜쇼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오로지 비용절감에 집중하여 본인의 성과를 내는 데에 급급한다. 그 치료가 자폐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 또 하나는 자신이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돈이 같은 펜싱 교실에서 자신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임과 동시에 다른 여성으로부터 호감을 이끌어내는 루를 질투하면서 루를 해꼬지하는 사건이다. 결과적으로는 자격지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의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감정이입하게 된다.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루는 비자폐인으로 변화할 수 있는 치료에 지원하기로 한다. 같이 참여한 동료 자폐인들 중에는 그 치료의 결과가 좋지 않게 나타난 경우도 있지만 루는회복한다. 다시 차별에 대해 생각한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정상의 범위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정상이 있다고 한들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 장애인의 반대는 정상인인가? 자폐인의 반대 역시 정상인인가? 나는 정상인가? 부정하고 오만한 비자폐인들에 비해 순수하고 정밀한 자폐인들을 보면 소위 정상이라고 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치료 윤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자폐인들에게 치료를 강요하는 크랜쇼도 나쁜 인간이지만 크랜쇼가 배제된 후 등장하는 의료인들의 태도 역시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정의 치료법이 등장하면 그 치료법의 안전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실패의 확률이 최소화됨을 확인하고 적용해야 하는데 자신의 성과를 위해 사람까지도 실험 도구로 보는 경향이 드러난다. 글쓴이는 인터뷰에서 일단 치료법인 등장하고 나면 그 치료법의 새로운(대부분, 덜 윤리적인) 사용처를 찾아낼 뿐 안전장치는 나중에 마련되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책은 SF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인간 본연의 내면을 파헤쳐 나간다. 그냥 순문학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과학의 요소는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책의 배경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 그것도 가까운 미래인데 책 속에 등장하는 문제들은 상상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문제인 까닭에 SF물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책 속의 문장들은 간결하고 정갈하다. 각 문장들이 미려하게 씌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으로써 전달하려는 바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상황을 명징하게 설명하기에 적확한 방식으로 글쓰기가 이루어져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식이 들도록 한다. 게다가 본문이 마무리되고 나오는 옮긴이의 말과 글쓴이의 인터뷰 내용까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알차다. 본문에서 다가오던 정성스러운 번역의 느낌이 옮긴이의 말에서 다시 살아나고 자폐란 무엇이며 비자폐인들이 어떻게 자폐와 자폐인을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보충이 글쓴이의 인터뷰에서 이루어진다. 글쓴이는 자폐인 아들을 키우는데 이 경험이 책 속에 녹아들어 자폐인들의 세계를 잘 이해하도록 해준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읽어보라는 말 이외에 무슨 리뷰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읽게 되면 어떤지 알게 되리라 보기 때문이다. 백언百言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머리와 마음 속 모두에 오래 남아있을 책을 만났다. 아직 이 책을 만나지 못한 분들이라면 꼭 만나보시기를 기대한다. 작년에 구입했을 때 아직 2007년에 초판이 발간된 것을 받았는데 2쇄를 찍지 못하고 폐간될까봐 안타깝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내용을 인용하며 이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들은 잘못된 질문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둠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P.366) 무지는 지보다 먼저 도착한다. 미래는 현재보다 먼저 도착한다. 지금부터, 과거와 미래는 방향만 다를 뿐 같지만, 나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빛의 속도와 어둠의 속도가 같아지리라. (P.524)
2004년 네뷸러 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작. 루 애런데일이라는 자폐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정상적인 삶 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다. 저자는 섬세하고 차분하며 내밀하게 자폐인의 심리를 다룬다. 끈적한 감상주의에 호소하기보다는 시종일관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세밀한 인물의 내면세계 구석구석을 탐구하고 있다.
어둠의 속도 를 읽으면 과연 정상 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정상 과 장애 를 가르는 구분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루를 포함한 자폐 증세를 가진 등장인물들은 치료를 받은 후의 나 와 치료를 받기 전의 나 가 같을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매우 진지하고도 견고하여 이제까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꾸어 버릴 정도이다. 이 소설은 정상과 비정상, 앎과 무지, 이해와 몰이해가 극단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경계를 정확히 짚어낼 수 없는 스펙트럼 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어둠의 속도
정소연 - 옮긴이의 말
폴 위트커버 - 엘리자베스 문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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