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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어느 프로에서 사학을 강의한다는 어느 아주머니가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박물관에서 고종황제는 우리나라의 최조의 황제에요 그럼 충렬왕 이전의 고려황제들은 무언가 백제 수장들도 황색옷을 입었다. 이 책의 내용도 똑같다. 책의 내용 하나하나 짚기전에 기본적인 책부터 나열해보자 대쥬신을 찾아서(다른 책을 안읽으시더라도 이 책만은 꼭 일어보세요)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풍수화성서의 뿌리p63,254돈가스의 탄생헌혈,사랑을 만나다국운풍수p294~297거란제국사연구대망노래하는 역사살아 있는 백제사/이도학새로 쓰는 한일고대사/정수일일본천황은 한국인이다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다일본의 상도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요시츠네후쿠자와 유키치료마가 간다풍신수길백제와 백제한자음 백제어팍스 몽골리카와 고려아나타는 한국인구태훈의 일본사등 일본사책들낙선재의 마지막여인덕혜옹주오키나와 현대사딱정벌레 박해일p287,483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야스쿠니의 일본 일본의 야스쿠니원흉과 원훈의 두얼굴 페이지142 대쥬신을 찾아서 먼저 읽으신후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국운풍수 294 읽고  장예모감독이 만든 진용 을 보신후 다시 p142 읽으시면 중국의 교묘한 동북종정트로젝트가  보이실겁니다.     00000000 p36 거란 위의 동북공정 내용이 의심이 가신다면 10세기 중엽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란에 대한 이야기  <거란 잊혀진 유목제국이야기> 리뷰에 제가 [만일 권율장군이 역모의 수괴였다면], [동해,일본해&성폭력범죄자의 특징] 제목의 글 올렸으니 참고삼아 보아주십시오p85 이성계는 나라를  통채로 중국의 식민지로 만든 역모의 수괴입니다. 대마도공략등 전쟁은 공민왕과 우왕시절의  이야기입니다.<욕망하는 지도> 이 책 리뷰읽는데 10분이면 충분합니다 꼭 좀 한번만 읽어주십시오 00000000      페이지36만주가 한반도의 몇배 넓이인데 한반도보다 작다 다른지도도 마찬가지다 p56은 더 작다.  또 거란은 이당시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나라이다. 쓰쓰는 백제식한자음입니다 <풍수화68> 진구황후란 나라를 잃은 백제유민들이 자신들의 울분을 풀기위해 지어낸말 사명대사가 일본으로 갔을때 도술을 보렸다는이야기를 우리가 어렸을적 믿었던것처럼.. 진구황후할떄 아기가 나오지 못하게 하기위해 배위에 바위를 얹고 줄로 묶었다는 황당한이야기등 여러가지 허구적 이야기들을 빼고 그냥 기승전결이 아닌 기결로 끝낸다. 흐지부지식논법. 일본말로 물은 미즈인데 한국어 미꾸라지,미역,미나리 모두 물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의 잔재들입니다. 페이지52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김춘추를 뛰어난 외교관이라고 평가하다니요  당신 정신이 바로박힌 사람입니까 그런 지금의 한국외교부장관이 중국의 시진핑수석과 만나 통일에  도움을 주면 평안도와 함경도를 넘겨주겠다고하고 평양이남을 우리가 차지하고 통일이 되었다고  기뻐한다면 제 정신이라고 생각됩니까 생각좀하시고 글을 쓰세요 일본천손강림신화를 보면 천신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는 남매간으로 그 부모는 이자나기,이자나미였다  [삼국사기]에는 고령 대가야의 시조는 이지아키로 그후 16대가 520년간 이어졌다고 쓰여있다  [풍수화/김용운] 박제상의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하시려면 김용운교수님의 책  2권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풍수화 꼭 읽어보시고 시간나시면 헌혈,사랑을 만다다p54  읽어보시면 왜가 어디소속인지 아실겁니다. 야마토는 고대한국어로 야마는 산,하늘,높다,신령한이고 토는 땅,터,마을이란 뜻입니다. 하늘밑 신령한마을 높을고 신령령자를 쓰는 경상북도 고령땅에 있었던 대가야입니다. 1930년대 국사교과서를 보는 것 같다. 페이지66 삼국통일 정말 좋아하십니다 말갈을 고구려인과 따로 분리시킨 사람은 식민지사학자  시라카와 구라키치입니다. 만주로부터 한민족을 분리시키려는 술책이었습니다.<대쥬신을 찾아서> 말갈은 마가,우가,저가에서 마가를 다르게 부른 이름입니다. 금은 신라인 경주김씨 김함보의 5대손 아골타가 세운 나라로 그래서 금나라 라고 한 겁니다.<송사> 윤관의 갈라전은 쏙뺏다. 페이지68 1867년이 아니라 1868년에 메이지유신이 일어납니다. 페이지70 항복했고요 이때 태자가 왕자로 격하되지요 삼별초는 박정희정권이 국민들의 애국애족읂 고취 시키기 위해서만든 신화입니다.  고려왕조실록/백지원,몽골은 왜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았나p93/ 페이지134 오희문 [쇄미록] - 한국,번영의길p73~77/공병호 페이지123 그림에서 신사앞 동물 두마리의 이름은 고마이누로 고려 를 뜻합니다 <일본의 신사>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한건 670년이 아니라 669년부터입니다. 임진왜란 <풍수화p406> 참조바랍니다. 중국의 이이제이전략에 놀아난게 임진왜란입니다. 무령왕릉 매지권의 사마와 스다하치만신사 인물화상경의 사마는 동일인물입니다. 지적할게 너무 많다. 임진왜란때 일본사신 야스히로의 이야기는 쏙 뺏네.. 개로왕이 왜로 보낸 목만치와 소가노 우마코와의 관계도 없다. 페이지 42 가네가 중국4성조의 영향으로 금씨로 조선시대엔 오행에 의해 김씨로 바뀝니다. 페이지85 위화도회군이 아니라 위화도 역모다 조정래씨의<세종대왕>리뷰 간단하게 달았으니 확인부탁 페이지132 사대교린 초한지란 소설에도 성우에게 조공을 바쳤고 갈석산에 대해선 들어보셨는지요 당송은 거란에 조공했어요 그외에도 있으니 공부좀하세요 페이지111 오키나와 상인의 첩보가 명에 전달 <풍수화p406> 야마토를 지도로 표시할때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모를정도로 노란색의 선도를 약간 조정해서 표시했다 얼핏보면 19세기말에 일본영토로 편입된 무쓰번 이북에서 대마도까지 야마토의 영토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제발 진지하게 책 좀 쓰십시오. 페이지119 경복궁에 불 안질렀습니다 <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페이지172 단식 안했습니다 황현의 <매천야록>  한국사 상식바로잡기 꼭 읽어보십시오 페이지 164 당시 아랍국가들은 모두 영국식민지였는데 이 책에 제대로된 지도가 없다. (그레이트게임,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호치민평전,팔레스타인 현대사) 페이지163 신미양요때 조선을 침략한 미군이 물러간건 링컨의 남북전쟁 때문입니다. 페이지158 마한,진한,변한을 합했다하여 큰한국 대한제국이라 부른겁니다. 이왕가에 대해선 그냥 화족 이라고 통일해 부르세요      제목 : 영화 최종병기 활 을 보고  한일어는 의태어 의성어가 발달했다. 슬슬 소로소로, 터벅터벅 토빠토빠, 깔깔 가라가라, 벌벌 부루부루, 줄줄 주로주로,  술술 스라스라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역사상식이 많다 일부만 보자 율곡의  10만양병설과 원효의 해골물 삼천궁녀 모두 후대에 지어낸 허구이며 여몽의  왕실 통혼도 고려에서 먼저 요청했다.  60년이상 이어온 썪은 무신독재의 척결과 외교적 현안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조선말  세도정치 60년이 곪아 터진것과 같다고 보면 얼추 맞다. 군사정권에 목을건 삼별초도  어찌보면 조선말 사대주의자들의 시각에서 해석된건 아닐까. 조선이 금과옥조로 여긴 삼강오륜도 근본은 그들이 야만인이라 생각한 몽골의 노재지학이  그 뿌리다.   일본은 천황을 상징으로 남겨둔 채 중앙집권기인 에도시대 전까지 막부로 대표되는  지방군벌간의 천년 가까운 싸움으로 지방자치의 틀을 다지다 중앙지배로 하나 된 나라로  역량을 집적해 우리의 세종시대라 할 수 있는 메이지시대에 일본인이란 인식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등장한 가스라 고고로, 후쿠자와 유키치, 도고 헤이하찌로, 무쓰 무네미스와 같은  근대사의 선각자들의 등장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져 막부로 다져진 지방자치와 에도시대의  중앙지배가 조화된 가운데 메이지시대를 거치며 현대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나라가 된다 . 이 복받은 역사를 가진 나라는 근원이 어디일까  최근 250만에서 1000만으로 늘어난  만주족의 정체성의 근원도 같이 느껴보자.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인 구다라(백제),만주족(고구려),한국(신라)는 같은 언어  같은 핏줄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란 증거를 제시하고자 구체적이고 긴 글을 올렸다. 만일 누군가 제 이론을 반박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와 같이 구체적인 자료로 반박해주시길  바라며 그냥 감정에 복받치는 소리치는 글로 반박하신다면 정신은 사라지고 단지  시정잡배들의 싸움으로 변질된 뿐입니다.   2002년 우에다 마사아카(일본의 저명한 원로사학자)교수는 신찬성씨록 좌경황별조  대원진인은 비다쓰천황의 손인 백제왕의 후손이란 대목에 대해 우리 기자에게 어떠한  대답도 못한 채 우물거리다 인터뷰를 끝맺는다.   구다라나이는 가치가 없다란 뜻이다. 구다라는 백제의 국명이고 나이는 무엇이 없다 이니  원뜻은 백제것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란 말이된다.   2001년 12월 23일 월드컵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천황이 자신의 몸속에도 한국인의  피가흐른다 는 즉 백제인의 후손이란 언급했고 일본언론은 아사히신문에서만 기사화했다.   전두환대통령이 일본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 히로히토 일왕은 ‘사실은 우리 조상도  한국인이라 발언’ 함. 이방자여사도 창덕궁 낙선재에서 일본천황가에선 숭늉을 마신다고 언급.   동경대 인류학담당 하니와라 카즈로 교수는 동료교수들과 공동으로 일본 각지의  고대 무덤의 두개골등을 통한 연구조사 결과 2300년전부터 건너온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인의 조상이란 사실을 규명하고 7세기초 백제유민이 대량으로 건너가기전  고대선주민인 조몬계와 도래계인 야요이계의 비율이 1대8.6으로 나타났다 이건  현재 일본인구 1억4천만명중 도래인의 숫자가 1억1천2백만명이 넘는다는 수치이다.   교과서에 실린 것만 보자 왕인, 한고안무, 수수보리, 아직기, 왕류귀, 오경박사, 호류지, 시 텐노지, 금당벽화 우리의 국보5호 일본국보 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미륵보살은  한국에서만 나는 적송으로 만들어졌고 한국인이 귀히 여기는 약지를 세웠으며 왕건릉에서  나온 인물상과 같이 유희좌를 하고 있다.   8.15광복후 우리정부가 일본에 요청했던 ‘한국문화재 반환1호’가 백제관음상인데  일본사찰에 내려오는 기록에 백제에 서 건너왔다고 자세히 나오나 일본인들은 유럽에  순회전시할 때나 자국에서 전시할 때도 일본 고유의 작품이며 조선에서 안나는 녹나무로  만들었다고 떠들지만 녹나무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벚나무와 함께 건너간 수종이다.  스다하치만신사인물화상경이란 고대 청동거울은 503년 백제 25대 무녕왕이 왜나라  왕실의 친동생 게이타이천황에게 보내준 이 거울에 ‘사마’란 휘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1971년 7월 8일 무령왕릉에서 나온 매지권에 사마가 무령왕의 휘란게 밝혀졌고 거기  명문에 적힌 무령왕의 친동생인 왜왕의 쾌유를 빌며 이 청동거울을 내린다라는 게  사실로 밝혀졌다.   무녕왕은 물에서 태어났다하여 무녕왕인가 일본의 가카라섬 즉 왕이난섬이다. 무령왕의  껴묻거리중 여러 목재유물이 가카라섬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로 만들어졌다는게 발굴직후  일본인학자에 의해 증명되기도 했다.   다른 이야기가 많지만 칠지도가 발목을 잡아 우선 거론한다. 전통은 계승된다. 군수뇌부가 결정되면 대통령은 칼을 장군에게 하사한다. 장군이 나라의  수반에게 칼을 올리는 일은 없다. 칠지도를 누가누구에게 올렸느니 내렸느니는  중요하지 않다.  칼을 만든 사람이 칼을 받는 사람에게 하사체로 쓴 것도 중요하지 않다.  ‘이 칼을 가진 자는 어떠한 적병도 물리칠 수 있다’란 명문, 어느 미친분이 그런 칼을  아무에게나 주겠는가 믿을 수 있는 같은 핏줄 아니면 어림없는 소리다. 백강전투에 패한 직후 왜군들은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어졌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을 어찌 다시 갈 수 있겠는가”라며 왜군들이 귀소처의 상실로  눈물을 흘린 사실을 일본서기는 기록하고 있다.   712년에 지은 고사기의 저자 오노 야스마로 그의 부친은 황산벌에서 마지막으로  전사한 백제장수의 아들이다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 안톤 오노 그냥 우연한 일이다.  알타이의 아사달 아사달은 고조선의 수도로 아침해 뜨는 언덕이란 뜻이 담겼고  고조선의 남하한 6부족유민이 세운 신라는 아사달과 김씨의 나라 김연아 그리고  아사달이 일본으로 건너가 받침이 사라져 아사다 마오 아사히 신문 아스카문명  그냥 우연이다 로또의 6자리 숫자처럼 가야 노부나가 이에야스, 백제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아이신자오뤄 누루하치도 사실은 김씨다 노루하치의 성인 아이는  아버지 신자는 신라 오뤄는 잊지말자 해석하면 아버지의 나라 신라를 잊지말자가 된다.   고사기보다 후대인 772년에 쓰여진 상표문엔 아스카 인구중 80-90%가 백제인이라  적고 있다.  아스카땅에 호류지의 찰주를 세우던 날, 소가노 우마코(목만치의 5대손)대신과  100여명의 만조백관은 모두 백제옷을 입었고 보는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했다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도 미치다 미치루 노루가 노로 미역, 미나리, 미늘, 미숫가루, 미꾸라지 모두  미즈(일본말 물)로 통한다 미는 즉 물이다.   김춘추는 왜사신과 대화에서 통역을 쓰지 않았고 백제 여인은 왜인과 대화했다고  일본서기는 남기고 있다. 어느 신문사의 일본 속 한국이란 제목으로 일본문화답사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구르다+마(싣는 기구)=구르마란 답이 나온다.

대마도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작은 섬. 지리적으로 한국과는 49km, 일본과는 138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지금도 대마도 주민보다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오가는, 한국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 섬’이다. 이 섬이 간직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는 깊고도 넓다. 임신한 몸으로 신라를 정벌했다는 고대 일본의 전설 속 여걸 진구 황후의 영령을 모시고 있는 하치만구 신사, 왜에 인질로 잡힌 고국의 왕자를 구한 뒤, 대마도에서 죽음을 당한 신라의 충신 박제상 이야기, 신라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왜로 피란 간 백제 유민이 쌓았다는 가네다 산성, 평화롭던 조선에 피바람을 불러 왔던 임진왜란의 흔적과 임진왜란의 아픈 기억을 딛고 평화의 사도가 된 조선 통신사들의 자취,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인생사 등 대마도 구석구석에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었던 역사의 흔적이 어려 있다. 대마도에서 만난 우리 역사 는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시대 순으로 대마도를 따라가며 한국과 일본에서 일어난 주요한 사건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 섬 대마도가 왜 한국 땅처럼 가깝게 느껴지는지, 그 섬에 담긴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의 시작과 대마도
- 진구 황후의 전설이 남아 있는 쓰쓰 반도에서

2. 삼국시대의 대마도
- 박제상이 장렬히 죽음을 맞은 미나토에서

3. 삼국 통일과 대마도
- 백제 유민의 한이 서려 있는 가네다 성에서

4. 고려 시대의 대마도
- 여원 연합군이 밀어닥친 고모다하마에서

5. 왜구와 대마도
- 조선의 정벌군이 밀어닥친 오자키에서

6. 임진왜란과 대마도
- 조선 정벌의 광풍이 몰아닥친 오우라에서

7. 조선 통신사와 대마도
- 평화의 사도를 따라 사스나에서 이즈하라까지

8. 항일 투쟁과 대마도
- 최익현의 충정이 서려 있는 이즈하라에서

9. 일제강점기의 대마도
- 덕혜옹주의 한이 서려 있는 이즈하라에서